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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콘텐츠 상자/베스트셀러 리뷰

[에세이 리뷰] 배우 박정민의 <쓸만한 인간>

by 딥박스 2020. 3. 6.

오늘 소개할 책은 배우 박정민의 에세이 <쓸만한 인간> 입니다.

이 책은 사람 참 열 받게 하는 책입니다.

연기도 잘하는데, 글도 잘 씁니다. 글에서 똑똑한 게 다 드러나는데

열 받은 이유는 재밌게 잘 쓰니 질투가 났습니다.

 

"못하는 게 뭐야?"

 

학벌주의자는 아니지만

배우 박정민은 공주 한일고등학교 출신입니다.

공주에 있는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로서 전국의 인재들이 모인 사학 명문입니다.

참고로 제가 떨어진 고등학교입니다. 켁

 

대학교도 한예종을 떨어지고 입학한 곳이 고려대학교이고,

반수를 통해서 한예종에 결국 입학했다고 합니다.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의 동경의 대상이었던 송몽규 역할 캐스팅이

정말 적절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물론 내 기억속에는 응답하라의 나쁜 선배로 더 선명하게 남아있음

아무쪼록 잘난 박정민의 글이 궁금했던 것도 있고,

감성 에세이에는 절대 돈을 쓰지 말자는 굳은 신념의 결합으로

서점에서 '쓸만한 인간'을 구입했습니다.

 

다음은 쓸만한 인간을 구매했던 2019년 추석 시즌에 적었던

저의 간단한 후기입니다.

 

서점에 가면 
애슐리에 간 기분이다.
잘 차려진 먹거리가 많다.

근데 첫 순방을 마치면
그다음에 사고 싶은 책이 없다.

책들이 다 비슷하다.
다른 이름들이 쓴 다른 제목의 책들인데
"이건 '모든 순간이 너였다'네"
"이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네"
"이건 '꽃을 보듯 너를 본다'네"
"이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네"

어쩌네 저쩌네 하면서
책 표지만 만지작만지작 거린다.

그러다 눈이 가는 책이 한 권 있어서
집어보았더니
샘플 없이 비닐 포장된 책이었다. '아... 이거 도박해 말아...'
'13,800원짜리 럭키박스 사 말어'
'이거 글 한두 줄 있고, 그림으로 바른 책 아니야?' 불안감에 인스타그램으로 검색해보니
내 예상이 딱 맞다.
눈길만 닿아도 사르르 녹아버려 사라지는
책은 사고 싶지 않았다.

추석 내내 읽을 책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1시간 정도를 고민하다가

에세이 신간에서 나는
응답하라 1988에서 내가 좋아하는 성보라에게
상처를 줬던 '서울대 선배'를 만났다.

배우 박정민의 산문집 '쓸 만한 인간' 이었다.

샘플 없이 비닐포장 되어 있다.
'아, 이것도 럭키 박스인가'

구매를 망설이던 와중에
'그래도 윤동주 시인을 시인으로 남게 해줬던
그 애국청년 송몽규 아닌가'라는 생각에
책을 사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책을 쓰는 내가 다른 사람들의 책을 보면서
동업자 맞나 싶을 정도로의 공격적인 태도로
책을 씹고 뜯고 맛봤던 걸 떠올리며 잠시 반성했다.

중간지점에서는
"11월에 나오면 나도 똑같이 당할 텐데 뭐"했다가

말미쯤엔
"아까 그 책들, 표지 개이쁘던데, 
이번 책 표지 그런 스타일로 가볼까?"하고
점점 밑바닥을 드러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책을 절반 정도나 읽었다.
추석 때 내내 읽을 생각이었는데 벌써 반을 읽었으니
이 책은 재밌는 책이 맞다.

첫 장부터 그는 매우 겸손한 태도로
작가라는 이름을 정중히 거절한다. '이 세상 모든 작가님들에게,
그들의 품위에, 그들의 고됨에, 넘볼 수 없는 존경을 표한다'고 적었다. 
배우가 산문집을 내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조금은 신경 쓰였을 것 같다.

나는 그의 첫 문구를 읽고 배우 박정민이란 사람은 자신의 직업을 아주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영역을 사랑하는 만큼, 타인의 영역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 말이다.

이 깨달음으로 나는 내 영역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합리적 의심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뒤의 내용들은 2013년 6월부터 시작하여
인간 박정민, 배우 박정민으로서 경험한 다양한 에피소드들과 그에 대한 짧은
소견과 사색으로 채워져 있다.

자유롭게, 편하게 쓴 듯한 글이지만
영화를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짧은 산문에도 시간적 흐름과 개연성이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있다.

대사도 많고, 인물들도 많이 등장하여
마치 힘 빼고 쓴 영화 시나리오를 보는 것 같다.

친절하게도 에피소드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글 말미에 정리해주는데, 대부분 위로가 된다.

근데 그 위로가 가볍지도 진지하지도 않아서 좋다.
그렇다고 밍밍하게 담백하지도 않고
적당히 짭짤하게 웃기기도 하면서 밀당한다.

글에 멋을 부리지 않아서, 주르륵 읽히는데
중간중간 상상의 이미지와 다르게 
얼탱이 없는 실생활 용어를 써서 개꿀잼. 뿌우~

이제부터 성보라에게 상처를 준 선배도
윤동주를 시인으로 머물게 한 송몽규가 아니라
산문집을 쓴 86년생 박정민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이 책의 내용은 다양합니다.

골목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동네형이 담배 하나 피면서

주저리 늘어놓는 썰,

밖에 서는 멋진 배우, 술자리에서 인싸인 선배의 썰,

진짜 배우의 진짜 배우들과의 이야기, 여행 이야기 등 

주제를 넘나 듭니다.

 

 

문체는 깔끔하면서도, 진지하고,

진지했다가 정신줄을 놓고, 독자도 정신줄을 놓으면

갑자기 확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 밀당이 끝나가는 게 아쉬워서 3일 동안 끊어 읽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정말 쓸만한 인간이 쓴 에세이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