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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콘텐츠 상자/독립출판 리뷰

[독립출판 리뷰] 끄적이다 끄덕이다

by 딥박스 2020. 2. 22.

독립출판물 첫 리뷰입니다.

2018년 1월 직접 독립출판물을 내기 전까지는 독립출판에 대해 완전 문외한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책 자체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1년에 한 권 읽을까 말까 한 사람이

책을 내다니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책을 읽는 것보다 쓰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

스스로 합리화했던 기억도 나네요. 그러다 독립출판을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독립출판물을 접하고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독립출판의 매력은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와 같은 대형서점에서 볼 수 없는 개성 넘치는 출판물을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출판하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책을 만들고 판매해 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인만큼

주제도, 스타일도 모두 제각각입니다.

 

특히 에디터의 손을 거치지 않은 날 것의 정돈되지 않은 거친 느낌은 정형화된 기성 출판물에서

느낄 수 없는 독립출판만의 살아있는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지똥' 작가의 '끄적이다, 끄덕이다'입니다.

독립출판에 관심이 많은 분들도 생소할 수 있는 책인데요.

이유는 이 책은 초판 딱 100권만 인쇄하고 유통했기 때문입니다.

본인 소장본, 가족 등을 제외하면 이 책을 독립서점에서 구매한 사람은

세상에 단 100명이 되지 않습니다.

 

책의 표지입니다

독립출판물을 소장한다는 건, 그 자체로 한정판을 구매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꿈을 소장할 수 있다니, 참 매력적인 예술분야입니다.

 

끄적이다, 끄덕이다의 간단한 스펙을 살펴볼게요.

 

도서명 : 끄적이다, 끄덕이다

저자 : 지똥

발행인 : 지똥

쪽수 : 218p

판형 : 110*150mm

 

판형이 제 손보다 작아서 들고 다니며 읽기 참 좋습니다. 

휴대하고 다니며 읽기 좋은 이유는 사이즈가 작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안에 담긴 컨텐츠 또한 텍스트가 길지 않은 담백한 문장과

꾸밈없는 그림으로 헤비하지 않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두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24개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챕터 '아무렇지도 않을, 날들을 위해'에서는 독자를 향한 위로와 긍정의

메시지를 주로 다루고 있고

두 번째 챕터 '끄적이다, 끄덕이다'에서는 작가의 조금은 슬프거나 어둡거나,

진중한 이야기, 개인적이고 솔직한 이야기들을 다룹니다.

처음에는 위로를 받다가, 책장을 넘길수록 작가를 위로하고 싶고, 같이 힘내자는

말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존에 위로를 위한 에세이에서 받던 작위적인 느낌과

독자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는듯한 일방향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독자와 진정한 소통을 하고 싶다는 작가의 마음이 잘 전해진 것 같습니다.

모든 작가들의 첫 작품에서 느껴지는 그 풋풋한 마음 말입니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페이지를 간략히 소개하겠습니다.

오래도록 펼쳐보지 않았던 마음 속 책장에서 동화를 꺼내어 읽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책장을 쓱쓱 넘기다보면 때론 작가의 개인적인 아픔과 현실적인 부분들이 나오는데

솔직하게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면서 독자의 아픔을 다독여주는 태도가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나에게는 이렇게 솔직할 용기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림을 살펴보면 솔직히 말해 그리 대단하지 않은 그림들입니다.
그리고 그 그림은 매 페이지 반복됩니다.
근데 그 그림들은 페이지마다 미묘하게 조금씩 달라요.
그리고 계속 보다보면 다음 페이지에 표정 하나만 다른데도 드라마틱하게 다가오는 마법을 부립니다.

잠시 책을 덮고, 그림 진짜 기깔나게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을 보면

'겉멋이 너무 들었다'는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지똥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도 '글을 쓴다고 얘기하는 작가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림을 꼭 그리는 지똥작가가 참 좋습니다.

저는 '잘 써야돼', '남보다 잘 쓸거야', '메시지를 꼭 담을거야','새로운 생각을 할거야', '나중에 책 잘 팔리게 할거야',
'팔로워 늘릴거야', '유명해질거야', '내 글로 돈 벌거야'라는
생각이 많아서 하지 못하는 것들을
지똥작가는 편하게 다 해요. 그 자체로 너무 부럽고, 대단하게 생각합니다. '끄적이다, 끄덕이다'를 읽다보면
지똥작가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대학 얘기도 나오고, 조카 얘기도 나오고, 직장생활 얘기도 나오는 걸 보면
나이가 얼추 있나보다 싶다가도
작가만의 일상, 사색, 약간의 슬픔, 자존감, 위로, 응원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 17살 소녀의 에세이를 읽는 것 같습니다. 순수하고, 담백하며, 거짓없이 따뜻합니다. 

특히 슬픔과 우울을 대하는 자세가 희망을 가진 사람의 모습입니다.

요즘 에세이들의 '너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라는 식이 아니라,
나이렇게해똥, 조롷게해똥, 요로코롬할래, 잘될지모르게똥의 느낌이 드는
이야기들로 사람 참 편하게 해줍니다.

이 책을 펴고, 다시 덮기까지
마음이 불편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다르게 표현하면, 마음이 따뜻한 적이 열 번이 넘었어요.

요즘 '호불호'라는 말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이 책에 불호는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미워할 수는 없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단 100권만으로

CJ의 북큐레이션에 선정되어 IFC몰 독립출판 소개코너에 당당히 한 자리 차지하고 있습니다.

IFC몰에 쇼핑하러 놀러 갔다가 이 책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사진을 찍어서 작가에게 보내줬더니 참 기뻐했습니다.

작가의 소감은 "나는 출세 못 했는데, 너라도 출세해서 다행이다" 였습니다.

너무 지똥 작가스러운 답이라 한참을 웃퍼했습니다.

 

독립서점이나 때론 어느 곳에서 이 책을 우연히 만난다면 한 번 펼쳐보세요.

그리고 그게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으니, 한 번쯤 구매를 고려해보시길 권합니다.

 

P.S 독립출판물을 리뷰할 때 아쉬움보다는 그 책의 매력과 가능성에 더 집중합니다.

     대형서점에는 완성된 책이 있고, 독립서점에는 미완의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