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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팁] 재밌는 글은 힙합을 먹는다 (라임, 펀치라인)

by 딥박스 2020. 3. 12.

저는 주로 짧은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카피라이터를 준비하면서 단 한 줄의 카피가 때론 몇 억의 제작비보다 효과적인 사례들을 보며

계속 짧은 글 위주로 연습을 해왔는데, 긴 글은 읽지 않는 게으른 성향과 재미없는 책만 펼치면

난독증이 오는 사람인지라 짧은 글 위주의 시나 카피, 짧은 글을 주로 읽고 쓰고 있습니다.

 

블로그를 통해 다양한 주제로 긴 글 쓰는 연습을 하면서 개인적인 역량을 높이려 하고 있는데

쓰던 글과 성향이 정반대라서 아직 많이 어색하네요. 하루하루 쓰다 보면 계속 발전하겠죠.

 

사실 이과로 24년을 살다가 대학교 4학년 때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어서

남들보다 늦게 글쓰는 방법에 고민하고 연구했던 터라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글쓰기에 대해 접해본 적은 없지만 대신 매일 도서관 은둔 생활과 인터넷 서핑을 통해

현재까지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소 마이너틱하지만 저만의 단기속성 방식을 깨달았습니다.

 

저도 계속 배우고 성장하는 입장이지만

나름 에세이 2권을 낸 저자로서, 카피라이터 경력 2년의 경험을 살려 

그동안 깨달은 짧은 글을 잘 쓰는 노하우와 훈련 방식을 차차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드릴 방법은 바로 "힙합을 들어라"입니다.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힙합의 역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국 뉴욕 빈민가에서 시작된 음악과 춤을 아우르는 거리문화를 의미합니다.

뉴욕 브롱스에 사는 빈민층, 즉 흑인들을 중심으로 그들이 받은 인종차별과 억압에 대해

저항하는 정신이 음악과 춤, 패션 등에 깊게 스며 들어가면서 생겨났습니다.

 

힙합의 흥미로운 점은 저항 정신과 흑인들의 특유의 흥이 어우러지면서 음악적으로 독특한 요소가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관중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계산된, 때론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워드 플레잉 (말장난)들이 지금 힙합의 인기를 만들어 낸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는데,

이 원동력의 핵심이 바로 라임과 펀치라인입니다.

 

단순히 언어유희적 표현에 그치지 않고,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강력한 인상을 남김으로써

저항 정신이라는 주제를 강화하는데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 오늘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포인트입니다.

 

이 라임과 펀치라인을 잘 활용한다면 우리가 글을 쓸 때 정말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나, 주제의식을 드러내야 하는

순간에 독자에게 더 효과적이고 강력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라임과 펀치라인

 

1) 라임

 

라임(rhyme)은 우리나라 말로 '각운'입니다.

쉽게 말하면 '글자들의 유사한 발음을 이용해 글에 리듬감을 넣는 방식입니다'

 

기본적으로 각 단어와 문장의 끝자리를 맞추는 방식이 있습니다.

영어와 한국어로 각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에미네의 'without me' 가사를 보면 

Guess who's back, back again

Shady's back, tell a friend

 

back이라는 동일 단어의 반복은 가장 기본적인 라임이지만

back again과 tell a friend가 가장 주요한 라임입니다.

굳이 한글로 적자면 '백 어 겐, 텔 어 프렌'으로 읽히죠.

그대로 읽어보면 리듬감과 운율이 형성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비틀즈의 'Let it go'에도 라임이 있습니다.

 

Let it go, let it go

Can't hold it back anymore

Let it go, let it go

Turn away and slam the door

I don't care what they're going to say

Let the storm rage on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가장 기본적인 라임은 렛잇고의 반복이 있고,

두 번째 줄의 anymore, 네 번째 줄의 door,

다섯 번째 줄의 to say, anyway가 라임을 맞춘 것입니다.

 

한국에도 다양한 예시가 있지만 가장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기리보이의 곡 'flex'라는 곡에서 피처링 참여한 스윙스의 가사를 보면

'제엠 김모씨, 못 듣는 말은 기모찌'

김모씨와 기모찌가 라임입니다. 

 

라임은 단어 발음의 유사성으로 글을 읽는 재미를 줄 수 있고, 

메시지를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라임의 실전 활용

 

실제 제가 책에 담았던 라임의 사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글쎄 Strong Words)

 

의사 선생님은 "따뜻한 물 많이 드세요."

의사 결정님은 "탄수화 물 많이 먹어라."

 

'의사'라는 동음 활용, '따뜻한 물, 탄수화 물'은 유사 발음 활용입니다.

'탄수화물은 참을 수 없다'는 다소 평범한 메시지를 라임을 활용해서 더 재밌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2) 펀치라인

 

펀치라인은 동음이의어를 활용해 중의적 표현으로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 힙합적 표현 방식을 말합니다.

쉽게 풀이하면 '촌철살인'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앞서 라임에서 예를 들었던 문장에서 '의사 선생님, 의사 결정님'도 펀치라인의 한 예로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단순 동음이의어 활용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앞뒤 맥락이 잘 맞아떨어져야 하며

때론 동음이의어를 활용하지 않더라도 정말 창의적인 언어유희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논리적인 고급 말장난'으로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타블로를 대표적인 펀치라인 장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동음이의어 활용 예시 

 

'홀로 남은 개리형처럼, '길'이 없어'

'마치 실직자, 네게 '내 일'은 없어'

 

논리 구조 활용

'정치와 god와 똑같지, '거짓말'로 돈 벌지'

 

타블로 외에 래퍼 서출구와 해쉬스완이 활용했던 펀치라인 중에

'자신 없으면 서질 말아야지, 고개 숙인 남자지, 발기부전 같이'

'반대로 난 전부 기발해, 날 뭣 같은 놈이라 해'

 

'발기부전'을 거꾸로 하면 '전부기발'이라는 정말 신선한 펀치라인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펀치라인의 실전 활용

 

제가 썼던 글들로 실제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동음이의어 활용

 

1)

내 상사들의 노하우는 

'어떻게를 묻지마, 까라면 까'라는 'No how'다.

 

-No how

 

2)

그때의 '알겠습니다'가 쌓여서

오늘의 '앓겠습니다'가 됐어요.

 

-사직서 번역본-

 

3)

아직도 꿈만 꾸고 다니냐?

아니, 난 누구한테 꿈을 꿔본 적이 없는데.

 

*논리 활용

 

1)

우리의 지문이 다른 이유는

서로 빠져나와야 할 미로가 다르기 때문이다.

 

2)

돈이 돈을 낳는다는데

내 돈은 피임하나 봐.

 

SNS를 통해 매일 글을 쓰고 있습니다.

등으로 쓸 수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글을 읽는 맛이 다르고, 메시지의 세기도 달라집니다.

여러분들의 담백하고 정성스러운 글 속에

한 두 줄 정도의 라임과 펀치라인 활용은 글맛을 살리는 좋은 소스가 될 것입니다.

 

이에 평소 감상 목적이 아닌 공부 목적으로 가사에 집중하면서 힙합 음악을 들으시면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실생활에서 좋은 글쓰기 표본을 습득하실 수 있습니다.

 

래퍼들은 매일 라임과 펀치라인만 연구하는 사람들이니

우린 재밌는 글쓰기의 엑기스를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죠.

 

이상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