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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 후기/기타

동물원이었던 서울 5대궁, 창경궁을 걷다.

by 딥박스 2020. 3. 23.

안녕하세요. 딥박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인 가운데

정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종로쪽을 가야했습니다.

 

약속된 미팅 시간이 한 시간 미뤄지면서

무얼 해야 할지 막막하던 상황에, 날씨가 너무 좋아서 

사람이 없는 곳으로 조금 걷기로 했습니다.

 

정처 없이 5분 정도 걸으니, 예쁜 궁이 보이길래 가봤더니

'창경궁'이었습니다.

 

가격은 3,000원이었는데, 오랜만에 외출했겠다, 사람도 없겠다.

들어가보고 싶더라구요. 처음보는 궁이라 없던 관심도 생겼습니다.

 

제 뜻밖의 나들이가 여러분에게 불편하지 않길 바랍니다.

더불어 창경궁에 대해 몰랐던 사실도 알려드리려 하니

살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행과 함께 방문했습니다. 성인 3,000원입니다. 

 

 

시국이 이래서 그런지 3,000원으로 짜리로 결제해주더군요.

 

시간이 넉넉지 않아서 창덕궁은 가보지 못했고 창경궁 쪽으로 향했습니다.

경복궁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물길이 있고, 아담한 화원이 있었습니다.

비 오는 날이 더 예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마 밑 서까래 끝에는 꽃무늬가 있었는데 지붕에 꽃이 핀 것만 같았습니다.

어떤 건물에는 노란색으로 되어있고, 보통은 분홍색이었는데

어떤 이유들로 다른지 도통 알 길이 없어서 너무 답답했습니다.

가이드북은 너무 빈약했고, 각 건물마다 설명이나 간단한 내용이 적힌

안내판조차도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창경궁 관련 역사적 사실들

 

  1. 1418년 조선 3대 임금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거처하기 위해 지었다.
  2. 임진왜란 때 선조가 떠난 후 경복궁, 창덕궁과 함께 일본에 의해 전소되었다.
  3. 19대 왕 숙종 때 장희빈이 사약을 마시고 죽은 곳이 바로 창경궁이다.
  4. 21대 왕 영조 때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 요절한 곳이다. (영화 사도에서 유아인이 죽은 곳)

 

서울 5대 궁에서 아픔이 없는 곳이 어디 있겠냐만은

창경궁은 유독 좋은 일이 없네요.

외세의 침략과 상관없이 왕가의 사람들이 죽은 곳이니 말이죠.

터가 안 좋은 것 같습니다.

 

그중 가장 슬픈 역사적 사실 하나는

바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창경궁을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만들고 지금의 테마파크로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름을 '창경원'이라고 지었고, 지금도 그 사실은 창경궁의 수난의 역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놀이공원으로 만든 게 왜 수난이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까 봐 적어봅니다.

 

궁은 왕과 왕의 사람들이 거처하는 곳이고, 한 나라의 중대사가 이뤄지는 심장입니다.

이에 어느 나라든 왕궁은 그 자체로 한 나라의 국격과 품위를 상징합니다.

일본은 조선의 국격과 민족적 자긍심을 짓밟기 위해 이 곳을 놀이공원으로 격하시킨 겁니다.

 

실제로 창경원을 만든 이후에 전국 각지의 국민들에게 대대적으로 홍보하였고,

주요 외국 인사를 초청하는 행사를 활발히 개최하면서 관람객을 모았습니다.

 

"봐라, 조선의 궁은 일본의 동물원이다", "조선은 일본의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마음 편하게 동물과 꽃을 보며 즐기는 동안 

조선인으로서의 민족적 자긍심은 점차 사라지고

일본의 식민통치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가랑비처럼 서서히 스며드는 무서운 공간이었습니다.

 

가이드북에는 이런 내용은 없고

정말 간략한 프로필 수준의 이야기들만 있었습니다.

 

관광객에게 역사적 아픔을 전면에 내세울 필요는 없지만

이 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때는 아픈 역사까지 알 수 있도록 하는

가이드북도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입문, 중급, 고급으로 가이드북을 만들고

중급부터 유료로 판매하는 방식 등을 활용하면, 단순히 나들이 산책이 아닌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할 수 있는 역사문화적 체험의 장이 될 수 있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나가는 길에, 어떤 아저씨가 아내분에게(여자친구일수도...)

여러 역사적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귀가 쫑긋하더라구요.

너무 부러웠습니다. 그의 지식이. 가까운 사람에게 편하게 전해듣는

세월의 이야기가 말입니다.

 

 

다음에 5대궁과 역사가 숨쉬는 곳을 찾게 되면

꼭 미리 공부하고 가기로 했습니다.

 

창문들과 몇몇 장식들이 참 일본스러웠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를 갑자기 되새기게 된 하루였습니다.

 

하루빨리 코로나가 사라져, 더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과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역사가 숨쉬는 공간들을 많이 찾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현재도 한복 입은 외국인은 입장 무료! 이런 프로모션은 참 아이디어가 좋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