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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콘텐츠 상자/1인 출판사

[1인 출판사] 1인 출판사를 창업하고 느낀 장단점

by 딥박스 2020. 2. 27.

1인 출판사를 차리는 사람 중에 부자가 되기 위해 이 길을 택했다고 하면

다들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본다.

 

하지만 1인 출판사는 엄연히 책 장사를 하는 사업이다.

수익창출을 위한 비즈니스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만 정말 좋아하는 것으로 수익을 내고 싶은 본질적인 욕구와 행복 추구권 등

머리보다 마음이 따르는 곳으로 발을 디딛는 약간의 낭만이 추가되는 건 사실이다.

직업이란 단어에서 '업(業)'의 숙명을 거스르지 못한 사람들이 1인 출판사를 차린다.

 

나 역시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좋은 책을 만드는 게 좋아서 1인 출판사를 차리게 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깊은 빡침과 수익 창출에 대한 기대로 가득하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자존감 수업', '언어의 온도'

이 베스트셀러들 모두 1인 출판사의 작품이다.

 

깡통이 되거나, 잘 나가거나

 

인세가 책 정가의 8~10% 정도 수준인데 반해

1인 출판사를 통해 직접 유통하고 판매하면 책 정가의 65% 정도가 수익이 된다.

 

물론 책 인쇄비, 책 디자인 비, 일러스트 작업비, 배 본사 월 이용료 등을 모두 혼자 부담해야 하지만

한 권만 독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져도, 이전 작품에 대한 관심으로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파생 효과가 있기 때문에, 1인 출판사는 희망고문 속에 살아간다.

1인 출판사는 열정과 인내심으로 하루하루 버텨나가는 일종의 진정성 있는 한탕주의라 표현하고 싶다.

 

2018년 11월 출범한 '딥박스'를 약 3달간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1인 출판사의 장단점을 살펴보겠다.

 

 

1인 출판사의 장점

 

  • 생활은 백수인데, 직업이 있다. 게다가 사장이다.
    요새 뭐하냐는 질문에 적어도 망설일 필요가 없다.
  • 책 1권 팔리면 '대형 출판사 인세로 받았으면 6권 판매한 거임' 하면서 정신승리한다.
  • 책을 내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 기획, 집필, 편집 모두 혼자 하기 때문에 나만의 개성 강한 책을 만들 수 있다.
  • 그만둘 때까지 망하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희망이 있다.
  • 외부의 실적 압박이 없기 때문에, 혼자 허리띠를 졸라매거나 아끼면 나름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
  • 한 권씩 쌓여가는 책을 보면 큰 뿌듯함을 느끼고, 세 권을 완성하면 한 권 출간 때보다
    세 배 더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느낌적인 느낌.
  • 동업자가 없기 때문에 싸울 일이 없다.
  •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 둘 중 하나라 다른 사업에 비해 안전하다.
  • 1년에 한 권씩만 출간해도 대한민국 상위 6% 출판사다.
  •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직업이라, 지인들이 신기해함.
  • 지인 장사는 의리반 호기심반으로 꽤나 쉽게 사주는 편.
  • 나는 사업체질이 아니구나 깨달을 수 있음.
  • 기적인 준비된 자에게만 오는구나 또 깨달을 수 있음.
  • 돈을 버는 능력보다 아끼는 능력이 발달하게 됨
  • 여러모로 구차해질 때도 있지만, 살아있다는 걸 느낌.

내가 걷고 싶었던 길이잖아요

1인 출판사의 단점

 

  • 책이 안 팔리면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라 여유로운 척 해도 마음에 계속 조바심이 생김
  • 모은 돈으로 출판사를 운영하게 되거나, 알바 등의 투잡을 하면서 출판사를 유지하거나
    해야 해서 출판사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생김
  • 자기가 집필한 책이 아니라면 작가 섭외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듯.
    마음에 드는 작가들은 찾는 사람이 많고, 1인 출판사가 경쟁력을 갖추기란 매우 어렵다.
    마음에 드는 작가를 찾아도 결국 책 제작비 등 일정 수준의 모험을 해야 하는 용기가 항상 필요. 
  • 자신의 능력 부족, 높은 현실의 벽을 매일 체감하면서도 꿋꿋이 버틸 강철 멘털 필요.
  • 그 강철 멘털이 없기 때문에 매일 힘들고, 스스로 케어가 필요함.
  • 자기가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어도 대중의 반응이 없을 때, 능력의 문제인데, 작전의 실패인지,
    마케팅의 한계인지 스스로 객관화하고 평가하기란 매우 어려움.
  • 객관화해도 버틸 자신이 있는지, 마케팅과 자본 탓만 하면서 살지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옴.
  • 1인 출판사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람은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이고 잘 될 사람임.
  • 보통 시간이 남아돌아서, 뭘 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대부분임. 그래서 입고 문의나 재입고 요청이 더 반가움.
  •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다. 스스로 결정하고, 나름 인생을 걸은 일이기에 다 내가 책임져야 한다.
  • 이 일을 접으면, 그다음에 하고 싶은 일이 없을 것 같아 걱정된다.
  • 베스트셀러라는 꿈에 취하게 되면, 정작 오늘 당장 하나씩 해야 할 원고 작업 등에 집중하기 어렵다.
  •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모든 일은 나 혼자 해야 하기 때문에 꾸준하기 어렵다.
    게으를 때 눈치 주는 사람이 없으니, 효율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1인 출판사 시작하는 분들에게

 

먹구름이라도 계속 가다보면 빛도 보겠지

 

  • 1인 출판사를 준비 중이라면 미리 영업 종료 일정을 잡아두자. 그때까지만 미친 듯이 달려보자.
    딥박스도 일단 2020년 하반기 초 첫 번째 책의 교보문고 진출, 하반기 초 두 번째 책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 만들고 싶던 책을 자유롭게 만들되, 기성 출판사들과 확연히 다른 자기만의 개성이 드러나는 책을 만들자.
    출판사를 운영하다 보면 다음을 생각하면서 안정적인 방향과 팔리는 책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는데
    이 생각에 매몰되어 자신만의 색깔과 실험정신을 잃게 되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수 있다.
    단 한 번으로 끝날 수도 있으니, 제대로 칼을 뽑아보자.
  • 현실의 벽에 너무 일찍 부딪히지 않도록 여유 자금을 모아 놓고 시작하거나, 평일 파트타임이나 일주일에 2~3일
    정도 아르바이트하는 것을 추천한다. 당장의 핸드폰 요금과 밥값 때문에 조급해지고 쉽게 인내심을 잃을 수 있다.
    무엇보다 적어도 육체노동을 하는 시간만큼이라도 출판사가 주는 부담을 잊는 시간도 필요하다.
  • 정말 진심 레알 좋은 책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 출판사를 하는 동안 그 마음만 잃지 않는다면
    불안 불안하지만 아주 멀리까지 날아가는 종이비행기가 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