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일기를 쓰는 건 어렵지만, 하루 동안 있었던 일과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하기는 쉽습니다.
꾸준히 쓰는 행위의 어려움은 있지만 일기를 쓰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은 아니란 겁니다.
이는 누구나 에세이를 쓸 수 있고, 출간할 수 있는 문이 열려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기는 에세이라는 큰 영역 중 하나의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권의 결과물을 얻고자 하는 자기만족 이상의 좋은 에세이를 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면
반드시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점을 정확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 게시물을 끝까지 읽으신다면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향후 에세이 집필을 위한
방향성을 잡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1. 에세이와 일기의 사전적 차이점
우선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겠습니다.
일기는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장부입니다.'
에세이는 '개인의 상념을 자유롭게 표현하거나, 한 두 가지 주제를 논하는 비허구적 산문 양식'입니다.
에세이의 장르로는 통상적으로 일기, 편지, 감상문, 기행문, 소평론 등 매우 광범위한 산문양식을 포괄합니다.
즉, 이미 당신의 일기장은 에세이란 소리입니다.
좀 더 쉽게 예를 들자면
일기는 가끔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을 저주하는 데스노트를 써도 상관이 없는 자유로운 장부이고,
에세이는 나의 수 많은 일기들 중에 데스노트부분만 모아서 하나로 엮는 산문집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일기는 에세이지만 좀 더 에세이답게 발전시키려면
내 일기를 한두 가지 주제로 축약된 엑기스 형태로 뽑아내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 당장 내가 쓴 일기들을 살펴보세요. 일기를 쓰지 않는다면 그동안 써온 글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세요.
그중 비교적 자주 등장했던 주제와 메시지가 있다면, 그 주제를 기반으로 에세이를 구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2. 실질적 차이
일기가 에세이의 부분집합이라는 말은, 결국 모든 일기가 에세이가 될 수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에세이 영역에 포함될 수 없는 일기를 걸러낼수록 훨씬 더 순도 높은 에세이를 집필할 수 있습니다.
일기가 아닌 에세이 영역을 정의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작가마다 조금씩 다를 겁니다.
에세이의 영역은 매우 넓고, 무엇보다 문학형식 가운데 가장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글의 취지와 목적성에 따른 구분이 가장 쉬운 것 같습니다.
"일기는 나 보려고, 에세이는 남 보라고 쓰는 글이다."
일기장과 메모를 제외한 모든 글을 남 보라고 쓰는 짓입니다.
정보, 감정 등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동안의 일기를 한두 가지 주제로 추렸다면, 해당되는 일기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다시 다듬어야 합니다.
맞춤법, 깔끔한 문장으로 수정 등 읽혀지는 글로서의 기본기를 갖춰야 합니다.
마치 집에서 무릎 튀어나온 츄리닝을 편하게 입고 있다가, 외출할 때 깨끗한 옷을 꺼내입는 것과 같습니다.
3. 본질적 차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에는 참 많은 책임이 따릅니다.
책임을 다하지 않은 에세이 책과 글들 때문에
최근 에세이 장르에 대한 독자들의 불신과 실망감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판매량 감소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 부분은 다음에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보여지는 글의 책임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누군가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해야한다.
당신의 에세이를 펼쳐준 사람은 당신의 마음을 들여다봐주는 감사한 손님입니다.
손님에게 좋은 음식과 가치있는 시간을 제공하지 않으면 쉽게 말해 싸가지가 없는 겁니다.
손님의 대부분은 바쁜 시간을 쪼개어 서점을 찾고, 수많은 책들 중 당신의 책을 골라 값을 지불한
사람입니다. 1인 출판사로 책을 직접 만들고 판매하면 한 권 한 권 판매되는 과정이 얼마나
기적에 가까운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첫 책을 집필중이거나, 아직 출간하지 않으셨다면
나중에 독자에게 죄송할 일 없도록, 최선과 정성을 다해야지 다짐하고 쓰세요.
2) 독자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해야한다.
부정적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독자에게는 '나만 그런 거 아니네', '다행이다'와 같은 긍정적 힘을 줄 수 있습니다.
나만의 관점과 철학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독자로 하여금 책을 읽고 난 후 더 좋은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말로는 굉장히 어려운 것 같지만, 짧은 공감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고, 당신의 관점을 제시하는 것만으로 독자의
시야를 넓게 할 수 있습니다.
3) 전하고자 하는 뚜렷한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위의 항목들을 충족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부분입니다. 당신의 에세이에 명확하고 뚜렷한 메시지가 있어야 합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바를 뚜렷하게 제시하세요. 메시지가 뚜렷할수록 반대되는 입장이 생기지만
그건 사람마다 모두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최악의 아이디어는 반대가 많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반응이 없는 아이디어입니다.
간단한 예시로 감성 에세이들 중에 '요새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언제부터 뒤틀린 걸까? -꽈배기- ' 같은
글을 쓰고 해시태그에 감성, 힐링 에세이라 하고, 스스로를 작가라 생각하는 뻔뻔한 사기꾼들이 너무 많습니다.
책은 읽는 사람에게 글쓴이의 결론과 답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반감이 두려워서, 생각하기 귀찮아서, 자기만의 철학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참 어려운 것 같다.' 등의 알맹이 없는
소리를 할 바에, 소신있게 뚜렷한 메시지를 던지고 적을 만드는 게 낫습니다.
독자들은 글쓴이인 당신이 가장 당신답길 바란다는 걸 꼭 기억하세요.
4) 그 메시지는 보편적이며, 공감과 자극을 줘야한다.
메시지의 보편성과 독창성은 꼭 구분해야 합니다. 제가 말한 메시지의 보편성은
'독자들이 납득한 만한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독자들의 삶에서 살짝 벗어난 이야기를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교집합 영역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겁니다. 독자에게 상상하지 못했던 반전의 재미를 주거나, 뒷통수를 치는
새로운 메시지를 던졌을 때, 그들이 호응하는 건 그 기저에 인간의 공통된 유대감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 유대감을 벗어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신선함이 아닌 괴랄하고 무의미한 이야기로 전해집니다.
4차원 친구를 보면 어느 정도 귀엽지만, 45차원 같은 사람을 보면 공감대가 없어서 거리를 두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선함과 자극에만 치중해서 예술의 다양성을 방패 삼아 인간다운 최소한의 영역을 건드리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최근에 어떤 작가가 반려동물과의 성관계를 다룬 에세이를 써서 유통 금지 처분을 받은 사례를 보면
성적 학대를 받은 반려동물과 그 이야기를 담으려고 목숨을 잃은 나무들이 안타깝습니다.
4. 외관상의 차이
당신의 입장에서 일기장과 책을 고를 때의 기준이 같은지 살펴보세요.
일기장과 책은 겉표지부터 다릅니다.
주제와 메시지의 방향성을 좁히고 결정했다면
초기 단계에서 디자인과 제목을 미리 구상해보아야 합니다.
원고가 모두 마감된 이후부터 고민해도 되지만, 처음에 앞으로 쓸 에세이에 대한
이미지를 미리 그려 놓으면, 책의 외관부터 내용까지 하나로 어우러진 책이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는 책의 완성도와 관련이 있으니, 되도록 기획 단계에서
잡아두세요.
5. 교환일기를 떠올리자
초등학교 때 교환일기를 써보셨거나, 친구의 교환일기를 빼앗아 훔쳐보던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저는 장난꾸러기였기 때문에 짝궁의 교환일기를 빼앗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 충격적이었던 건 별 내용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누가 누굴 좋아하는 내용도 아니었고
오늘 점심 메뉴에 대한, 학원 끝나고 떡볶이 먹으러 가자는 정말 일상적인 얘기였습니다.
흥미가 떨어져 바로 돌려주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 재미없는 교환일기는 단 몇 페이지만에 흥미를 떨어트렸습니다.
제가 만약 교환일기를 썼다면 그 기억을 기반으로 조금 더 재밌는 이야기, 나다운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했을 것 같습니다. 이제 감이 잡히실 겁니다.
대형서점, 동네 가까운 독립서점을 찾아가세요. 그리고 에세이 장르로 가서 베스트셀러들과 신간 코너에
가보세요. 그리고 냉정하고 솔직한 평가를 내려보세요. 생각보다 많은 책들에게서 아쉬움과 실망감을
느끼실 겁니다. 그 감정과 감정을 느낀 이유들을 잘 메모하세요. '이렇게 쓰고 싶다'보다
'이렇게는 쓰지 말아야지'가 당신만의 자유로운 이야기와 문체를 완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몇 번 서점을 찾아가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책에게서 배울 점을 느끼고, 그 작가만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차별점이 보이실 거예요. 나는 어떤 에세이를 만들고 싶은지, 나만의 색깔은 어떤 지
객관화해 보시고, 원고 작업을 하시면 좋은 에세이가 완성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렇게 나온 제 신간 말대꾸 에세이, 글쎄 (Strong Words)는 이 과정을 통해 완성된 에세이입니다.
전국 독립서점에서 판매되고 있으니,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되신다면 한 번 펼쳐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광고의 목적도 물론 있지만, 책의 컨셉과 인덱스 구성, 자기만의 관점을 녹이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 책이라
참고용으로 자신있게 추천합니다.
출간한 분들 계시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충동구매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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